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해리슨 (문단 편집) === [[비틀즈]] 시절 === 초기에는 레논-매카트니와 함께 몇 곡을 작곡했으나, 그 수는 적은 편이었다.[* 최초로 작곡한 곡은 2집 [[With The Beatles]]에 수록된 'Don't Bother Me'. 처음 만든 곡치고는 훌륭한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존과 폴의 영향을 받아 작곡한 아류작이다. 훗날 조지 자신도 이 곡을 혹평한다. 그러나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일취월장, 청출어람.] 조지 해리슨은 불세출의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페퍼상사]] 전후로 갈리는 활동 후반기에도 점진적인 음악적 성장을 보인다. 페퍼상사에서 작곡한 몽환적이고 로맨틱한 곡 '[[Within You Without You]]', [[The Beatles|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걸작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등으로 [[듣보잡]] 논란을 완벽히 종결시켰다. [[Abbey Road]]에서도 '[[Here Comes the Sun]]'과 '[[Something]]' 같이 주옥같은 명곡들을 수록해 입지를 굳건히 했는데, 특히 '[[Something]]'은 존과 폴 못지않은, '''앨범 최고의 곡으로 평가받는다!'''[* '[[Something]]'에 대한 [[프랭크 시내트라]]의 반응은, '가장 아름다운 레논-매카트니 발라드' 여기에 대한 폴의 반응이 "고마워요, 프랭크"로 일품이다. 존과 폴 역시 'Something'의 진가를 시원하게 인정한다. 링고도 뒤에서 나름 기뻐했다고.] [[Let It Be]]에도 '[[I Me Mine]]', '[[For You Blue]]' 등 조지 특유의 가녀린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감성이 돋보이는 곡들을 수록한다.[* 그런데 사실 조지 해리슨은 원래 가녀린 목소리가 아닌 굵직한 목소리였다. 당장 초기 곡인 'Don't Bother Me'나 'I'm Happy Just Dance with You'만 들어봐도 굵직한 목소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967년 'Within You Without You'를 기점으로 비음을 가미한 창법으로 변화를 주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mediad.publicbroadcasting.net/George.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조지 해리슨 60년대 초반.jpg|width=100%]]}}} || ||<#fff> '''비틀즈 초기 시절의 조지 해리슨''' ||<#fff> '''기타를 연주하는 조지''' || 조지가 비틀즈 활동 중반기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기 시작한 것은 비틀즈 멤버들 중 최연소자였다는 점도 있겠지만 자신보다 먼저 폴 매카트니와 친했다는 이유로 해리슨을 질투한 존 레논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실제로는 존이 조지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I’m Happy Just to Dance With You를 조지에게 주었으며[* 당시 조지는 자신의 작곡 능력에 대해 위축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지가 [[Taxman]]을 작곡할 때 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존은 비록 자기 할 일이 많긴 하지만 조지를 많이 아꼈고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마지못해 도와주었다고 언급하는 등 서로에게 많은 도움과 영감을 줬다. 당시 조지 해리슨의 작곡 실력이 [[레논-매카트니]]에 비해 뛰어나지 않았기에 폴 매카트니가 송라이팅은 [[레논-매카트니]]의 영역이고 조지는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암묵적으로 믿었다고 한다. 그는 음악에 대한 얘기를 보통 존과 많이 나눴고 조지가 하는 얘기는 상대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 조지가 소외감을 느끼는 데 기여했다. 조지의 연주를 지적을 하며 자기가 지시한 대로 연주할 것을 요구한 것 역시 조지의 반감을 많이 샀다.[* 밴드 음악의 특성 상, 각 멤버가 맡은 악기 파트는 개인 재량에 따라 스스로 구성하고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Get Back]] 세션 당시 조지가 일시적으로 밴드를 떠난 때에도, 조지의 기타 연주에 대한 폴의 지적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비틀즈의 말기에 폴 매카트니가 주도하는 밴드의 방향성에 조지가 염증을 느끼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다만 이것은 링고가 나중에 '폴이 일 중독 수준으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 당시 비틀즈가 그나마 그렇게라도 돌아간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 처럼 폴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 면이 크다.] 1965년부터 조지 해리슨은 다른 비틀즈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돌'이라는 지위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지는 종교에서 그 해답을 얻는다. 원래 비틀즈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성격이었던 조지는[* 1966년 발매한 7집 [[Revolver]]에서는 당시의 지나쳤던 세금 징수를 비아냥거리는 노래 '[[Taxman]]'을 작곡하기도 했다.] 1965년 영화 Help! 촬영 도중 인도 문화와 철학에 매료되었고 얼마 뒤인 1966년 부인인 [[패티 보이드]]와 함께 [[힌두교]]의 한 분파인 [[크리슈나교]]로 개종하였다.[* 조지는 허울좋은 [[천주교]]계였다고 한다. 부모님들의 종교적 강압은 딱히 없었다고.] 이후, 자신뿐만 아니라 비틀즈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인도 요기, 구루들과 교류하게 되었으며, 훗날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마약]]을 끊기도 했다. 조지는 비틀즈 멤버들 중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비틀즈 6집 [[Rubber Soul]]의 트랙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에 서양음악 최초로 [[시타르]] 연주를 도입했고[* 사실 이 곡의 작곡자는 존 레논이며, 새로운 방식의 사운드를 표현할 악기를 찾다가 당시 라비 샹카라는 시타르 연주가의 음반을 통해 처음 시타르를 접한 이후 시타르를 배우고 있던 조지 해리슨에게 연주를 권하면서 사운드가 완성된 것이다. 이후 비틀즈 앨범에서 나오는 시타연주에 비해 이 당시 해리슨의 연주가 비교적 설익은 느낌을 주는 것은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이다.], 같은 앨범에서 'Think For Yourself', 'If I Needed Someone'과 같이 [[사이키델릭]]하면서도 독창적인 곡들을 작곡하여 앨범 내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비틀즈 후기에 폴 매카트니와 크게 대립하여 비틀즈를 잠시 나가기도 했다. 물론 멤버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 금방 돌아오긴 했다. 이 시절 조지는 이미 솔로 활동에 대해 생각중이었다. 비틀즈 음악과는 별개로 자신의 솔로 활동으로 음악적 자아를 펼치길 원했고 오히려 이러한 방식으로 비틀즈의 영역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각자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비틀즈 해체 이후 링고 스타와 함께 존 레논의 집에 놀러갔을 때 오노 요코가 "4인조 밴드 비틀즈..."라고 말을 하자 폴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그를 비틀즈의 멤버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투로 "3인조 밴드"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난 후 폴과의 관계는 회복했다. 사이가 소원해진 쪽은 오히려 존 레논이었는데, 70년대 후반 저술한 전기 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존 레논을 누락시켜 버렸다. 존은 이걸 무척 불쾌하게 받아들였고, 살해되기 직전까지 화해조차 하지 못했다. 후에 조지는 존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한으로 여겼다.[* 훗날 [[Cloud Nine]]을 발표한 1987년, 조지는 존 레논의 영향을 축소 서술한 이유를 질문 받자, "제가 존 레논에게 미친 영향도 스스로 상당 부분 생략해서 서술했어요. 저는 상호 영향을 쌤쌤이 치기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라고 답하면서 오히려 가까운 관계였기에 일일이 서술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비틀즈가 해체하기 전 조지는 솔로 앨범 두 장을 내게 되는데 한장은 영화 [[Wonderwall]]의 OST인 '[[Wonderwall Music]]'이고 또 한장은 '[[Electronic Sound]]'로 각각 1968년과 1969년에 발매되었다. 다만 Electronic Sound는 너무 실험적이라 그냥 묻혔다.[* 앨범명에서 알 수 있듯이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전자음을 만들었는데 너무 실험에 치중한 앨범이라 묻혔다. [[빌보드 200]]에서는 191위에 오르며 간신히 턱걸이를 하였고 UK 차트엔 오르지조차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